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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kg 돼지, 폭 60cm 철창서 ‘살찌는 기계’로

천하한량 2012. 9. 28. 03:59

돼지는 인간에 비유하면 서너 살짜리 유아 수준의 지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각과 청각, 후각 모두 예민하게 발달한 동물이다. 과거 야생에서 살던 돼지는 따뜻한 햇살 아래 부드러운 흙에 코를 킁킁거리며 행복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돼지들은 인간의 욕심 때문에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 갇혀 옴짝달싹 못한 채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

돼지 축산 공장에서 번식용 암퇘지는 '스톨(stall)'이라 불리는 철창 칸막이에 갇혀 평생을 산다. 스톨의 크기는 보통 폭 60㎝, 길이 210㎝다. 몸무게가 200㎏에 달하는 암퇘지는 좁은 스톨 안에서 몸을 뒤척이기도 쉽지 않다.

몸집이 좀 더 큰 암퇘지는 다리가 칸막이 밖으로 삐져나온 채 하루종일 한 방향으로만 누워 있어야 한다. 새끼들은 그렇게 누워 있는 엄마 돼지에 매달려 젖을 빤다.

국내 한 돼지사육 농가에서 암퇘지가 몸을 뒤척이기도 힘든 폭 60㎝, 길이 210㎝의 '스톨'이라 불리는 철제 칸막이에 갇혀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 동물자유연대 제공

다산을 하는 돼지는 새끼들이 젖을 뗀 후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임신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번식용 암퇘지는 평균 수명 3년간 좁은 스톨 안에서 쉼없이 새끼만 낳다가 도축장에서 생을 마감하는 게 보통이다.

갓 태어난 새끼 돼지들에게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가해진다. 생후 열흘 내에 송곳니와 꼬리가 잘리고 수퇘지는 거세당한다. 밀집형 공간에서 돼지의 공격성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돼지들은 이 과정에서 염증과 구토, 경련 등의 육체적 고통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는다.

동물학대에 반대하는 동물자유연대는 27일 서울 광화문역에서 공장식 축산으로 고통받고 있는 돼지의 현실을 고발하는 '행복한 돼지' 캠페인을 벌였다.

동물자유연대는 "공장식 축산의 폐해는 돼지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인간에게 돌아온다"며 "결국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고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국의 공장식 축산에서는 선진국에 비해 많게는 10배 이상의 항생제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비좁고 비위생적인 사육환경의 부작용을 항생제로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이는 돼지고기를 먹는 사람들의 항생제 내성을 높이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돼지는 도축장으로 가는 과정에서도 빼곡한 트럭 안에 갇혀 스트레스로 죽는 일이 빈번하다.

유럽연합(EU)은 2006년 가축에 대한 성장촉진제와 항생제 사용을 금지했다. 내년부터는 스톨 사육을 전면 금지한다. 미국에서도 플로리다, 애리조나, 미시간, 캘리포니아 등 8개 주에서 스톨 사육이 금지돼 있다.

세계적 패스트푸드 체인인 맥도널드, 버거킹도 비인도적인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된 돼지·닭고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한국도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동물복지' 논의가 한창이다.

농촌진흥청은 지난달 24일 발표한 '세계 축산의 새 흐름, 동물복지' 보고서에서 동물복지 축산이 공장식 축산보다 경제성이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공장식 축산에서 동물복지 축산으로 전환하면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보다 추가로 발생하는 수익이 더 많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풀어 키운 닭은 좁은 곳에 가둬 키운 닭보다 세포노화를 막아주는 비타민E(100%)나 면역력을 높여주는 베타카로틴(280%)이 더 많이 함유된 달걀을 낳는다. 인체 세포를 보호해주는 오메가3 함유량도 풀어 키운 돼지가 가둬 키운 돼지보다 290%, 닭의 경우 565%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올해 산란용 닭을 시작으로 내년엔 돼지에 대한 동물복지농장 인증제도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 제도는 가축이 편안한 환경에서 본래의 습성대로 사육되는 농장을 국가가 인증해 주는 제도다.

동 물자유연대는 "대부분의 농장사육 동물들이 오직 생산성의 원리에 따라 불편한 환경에서 부상과 질병,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며 "동물을 병들고 불편하게 만드는 환경은 인간의 건강과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 이서화 기자 tingc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