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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픈 사람들… 지난해 53만 5000명 병원 찾았다

천하한량 2012. 7. 29. 20:04

마음이 아픈 사람들… 지난해 53만 5000명 병원 찾았다

# 대기업에 다니는 김광수(40·가명)씨는 지난해부터 극심한 피로감과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어 회사 가기가 싫었고 아내와 자녀에게는 수시로 짜증을 낸다. 회사에서는 부하 직원들에게 '인상파 과장'이란 소리까지 들었다. 이러다 보니 혼자 있게 게 잦아졌고 흡연량도 배로 늘었다. 혼자 술 먹는 게 습관화됐고 술을 마실수록 더욱 우울해졌다. 요즘엔 몸이 조금만 아파도 중병에 걸린 건 아닌지 불안에 떨고 있다.

# 결혼 30년차 주부 오애란(55·가명)씨는 올해 큰아들이 결혼하고 작은 아들도 군에 입대하자 갑자기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이런 느낌이 들자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친구들도 만나고 남편과 여행도 즐기던 오씨는 식음을 전폐한 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무 이유 없이 눈물만 나고 모든 게 허망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우울증 진료 환자 53만5000명'(국민건강보험공단·2011년), '여성 우울증 일년 평균 4.4%씩 증가'(국민건강보험공단·2010), '국민 3%(150만명)가 일년 중 우울증 경험'(보건복지부·2011).

우울증이 국민들의 정신과 육체를 갉아먹고 있다. 우울증 관련 지표는 경쟁하듯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까지 우울증이 사망과 장애요인을 포함하는 질병 부담에서 2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2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1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우울증은 10년 전에 비해 1.5배 증가했고 남녀 모두 증가 추세로 나타났다. 또 성인 여성 10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신의학에서 우울증(우울장애)은 의욕 저하와 우울감으로 정신·신체적 증상을 일으켜 일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질환이다. 정신의학자들은 심한 우울증은 자살에 이르는 뇌질환이라고 경고한다.

역학조사에서는 자살 시도자만 10만8000여명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정신보건센터가 같은 기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응급실에 내원한 자살 시도자 중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가 30%나 됐다.

이명수(정신과 전문의) 서울시정신보건센터장은 "우울증은 의학적으로 주요우울증, 기분부전장애, 양극성장애(조울증)가 해당되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은 주요우울증"이라며 "우울한 기분이나 흥미 상실, 체중 감소·증가, 불면·수면과다, 무가치감·죄책감, 자살계획 등과 같은 증상들이 2주 이상 지속되면 반드시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 제는 우울한 사람은 많지만 도움을 받는 사람은 적다는 현실이다. 서울시민 정신건강인식도조사(2010)에 따르면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을 질병으로 인식하는 비율은 88∼90% 이상으로 높게 조사됐다. 또 응답자 23.2%가 스스로 우울증 성향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우울증 성향자 31.5%만 상담이나 도움을 받았다. 도움을 받은 경우도 친구(49.3%)와 가족이나 친지(24.7%)가 대부분이고, 정신과 전문의(6.8%)를 찾은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이는 우울증에 대한 인식 부족 때문이다. 백종우 경희대(정신과) 교수는 "사람들은 우울증을 병이 아니라 개인의 의지로 극복해야 할 문제로 본다"며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처럼 우울증도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 울증 환자에 대한 편견도 병원 치료를 방해한다. 백 교수는 "환자들은 정신병원에 간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편견에 시달려 지속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우울증은 재발 시 만성화될 수 있기 때문에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 가들은 정신과 치료 경력이 취업이나 보험 가입 등에 장애가 되는 상황을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정부가 가벼운 우울증 환자 등은 정신질환자의 범주에서 제외키로 한 것은 이러한 현실과 맞물려 있다. 하지만 제도 개선이 정신질환 자체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거나 정신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을 더욱 낮추는 노력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서울시정신보건센터장은 "최근 중증 우울증 환자들이 자살과 같은 극단적 방법을 택하고 있어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