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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 떠나는 홍정욱 지난 4년의 커피맛은 지독하게 썼다

천하한량 2012. 1. 14. 16:56

 

정치판 떠나는 홍정욱 지난 4년의 커피맛은 지독하게 썼다

여당은 거수기, 야당은 떼쓰기

리더는 설득과 소통을 못하면 떠나야 한다고 난 배웠다
FTA 합의처리 그렇게 노력했지만 또다시 몸싸움… 얼굴 들 수 없었다

불출마가 홍정욱의 꼼수라고?

서울시장 되고 대통령 도전한다니… 음모론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상대 후보에 질까봐 발 뺐다고? 지역구서 난 충분히 유리했다

정치판 컴백 없다

꿈을 품고 의원 4년 해봤지만 제도권에선 운신의 폭 좁아…
古典 통해 지혜나눔 운동 등사람들에게 희망 주고 싶다

' 올재'는 홍정욱(42)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해 가을 '지혜 나눔'을 표방하며 설립한 비영리 법인이다. 사무실 위치가 재미있다. 청와대 춘추관 옆 건물로 '공근혜 갤러리' 2층이다. 홍 의원을 찾아간 날 그는 '대박'을 냈다며 좋아했다. '올재 클래식스'라는 동서양 고전 4권의 한정판(총 2만권)이 출간 하루 만에 완판됐다.

홍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건 올재를 설립한 석 달 뒤였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지난 4년은 실망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냉소와 불신을 씻지 못했다, 직분을 다하지 못한 송구함이 비수처럼 꽂힌다"고 했다. 홍 의원은 서울 노원병에서 당선돼 2008년 18대 국회에 입성했다. '미국통' '중국통'으로 불리며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활약했고, 의정 활동 내내 국회 폭력에 반대하는 활동으로 '협상파' '쇄신파'로 통했다.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격돌했을 때 '기권'을 선언, 여당의 단독 처리를 무산시켰고, 최루탄이 터진 한·미 FTA 비준동의안 표결에도 불참했다. "시정잡배도 안 하는 짓을 국회에서, 국익이란 미명하에 버젓이 감행하는 것은 수치와 굴욕의 유산"이라고 질타했다.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 올해 5월로 국회 의정활동을 마치는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이 인터뷰 도중 커피를 마시고 있다. “성공의 아이콘인 홍정욱 40년 인생에 첫 실패인 셈이냐”고 묻자 “벤처도 두 번 실패했고, 무일푼 된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8년 ‘해머국회’ 이후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다니지 않는다.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11일 올재 사무실에서 만난 홍 의원은 '실패' '절망'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하버드·명문·성공의 아이콘이었던 홍 의원은 무엇에 실패했다는 걸까. 초선 의원, 불출마 1호 의원의 정치 도전 실패 연구다.

직분을 다하지 못해 떠난다

―불출마 선언을 후회하진 않는지.

" 지도자는 설득과 소통을 하지 못하면 떠나야 한다는 것이 내가 받은 가르침이다. 4년 전 내가 (국회에) 들어올 땐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 것이란 확신과 열망이 있었는데 돌아보니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의원 300명 중 1명이고, 초선 의원이라는 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마지막 면죄부로 한·미 FTA 합의 처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좌절됐고, 더 이상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할 수 없었다."

―의원들이 '불출마 선언'을 입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 2011년 예산안 파동 직후다. 그들이 모두 불출마 선언을 이행하진 않았다.

"물리력이 동원된 의결이냐 아니냐 하는 해석은 각자의 소신에 맡겼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선언을 주도하고, 야당과 협상을 주도한 사람이기 때문에 훨씬 엄격하게 해석해 불출마를 결심했다."

―'정당과 국회를 바로 세우기에는 내 역량과 지혜가 턱없이 모자랐다'고 했다.

"4 년간 의정 활동을 하면서 어느 한 사람에게도 직접적인 도움을 준 적이 없다는 자괴감이 컸다. 이를테면 지역구에 학비가 없어서, 점심 먹을 돈이 없어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나도 정치자금법이라는 것 때문에 1만원도 도와주지 못했다. 오히려 국회를 벗어나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겨우 초선 의원인데, 성급한 결정 아닌가.

"4 년이란 시간은 학위를 하나 받을 수 있고, 50년 적자 기업을 정상화할 수 있으며, 아이를 둘 낳을 수 있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재선, 삼선 의원이 되어야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게 아니다. 나 스스로 기대하고 약속했던 목표치에 턱없이 모자랐다."

―전당대회 '돈 봉투' 소용돌이가 거세다.

"4년간 나는 '봉투'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다. 어떤 계보에도 속하지 않아서일 거다. 선배들한테 내가 잘못한 게 많은 것 같다(웃음)."

국회 몸싸움, 죽기보다 싫었다

―너무 교과서적으로 순진하게 현실 정치를 대해온 게 홍정욱의 한계 아닐까.

"일리 있다. 하지만 어진 정치를 행할 수 있다고 믿는 게 성인이요, 포기하는 것이 소인배의 정치다."

―한나라당의 층층시하(層層侍下) 위계질서, 대한민국 국회의 세속적인 관행에 적응하기 힘들었을까.

" 당내 선배들과 관계 맺는 데 열심을 다하진 못했다. 술·골프를 못하니 인간적 스킨십도 없었던 셈이다. 후회도 된다. 사실 초선 의원으로서 어디까지가 정치적 소신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적 예절인지 고민되더라. 예의를 다하면서 소신을 지킨다는 게 정말 어려웠다. 다른 건 다 견딜 수 있는데, 몸싸움은 정말 끔찍했다. 여당은 거수기, 야당은 떼쓰기라는 말이 딱 맞았다."

―오죽하면 몸싸움을 하고 단독 처리를 강행할까, 하는 생각은 안 해봤나.

" 해봤지. 초선 의원의 사치인 것도 같더라. 다만 나는 타협과 협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을 뿐이다. 외부에서 가해진 혁명이 아닌 내부의 개혁은 힘센 사람, 가진 사람이 한 걸음 더 양보해야 이뤄진다. 내가 두 걸음 양보하고 상대를 한 걸음 나오게 해야 타협이 이뤄진다."

―몸싸움 대표 주자인 민노당 강기갑 의원을 경멸하겠다.

"한나라당이 국익을 내세워 밀어붙이는 거나, 자신의 이념을 위해 몸을 던질 수밖에 없다고 믿는 강 의원의 행동은 다르지 않다. 강수의 밀어붙임과 소수의 결사 저항, 그 둘은 같이 맞물려 가는 축이다."

―당론에 맞서는 언행으로 논란이 됐다. 한·EU FTA 비준안 처리에 기권표를 던져 한나라당의 단독 처리를 무산시켰다.

"내가 나이브(순진)한 건지는 모르지만, 내겐 합의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한 걸음 더 양보하면 야당을 협상 테이블에 앉힐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명인들의 투표 독려를 금지한 것도 강력하게 질타했다.

" 선관위의 사명은 선거율을 높여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투표율이 낮으면 여당에 유리하다고 해서 선거일에 비가 왔으면 좋겠고, 눈이 오면 좋겠고 하는 게 말이 되는가. 노래 잘 부를 생각은 안 하고 관객만 많이 왔으면 하는 속셈, 보수 정치 세력이 놓치고 있는 게 바로 그것이다."

―그 때문에 '좌파의 귀염둥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논어에 '내 무능함을 걱정하지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염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국회의원 수를 대폭 줄이고 세비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지금처럼 거수기와 떼쓰기로 흘러간다면 국회에 많은 의원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세비 삭감은 국회의원이 생계형 직업이 아니라 서구처럼 봉사직으로 가야 한다는 뜻에서 발언했다.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이 200가지나 있다던데 그런 건 다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가장 큰 敵은 소통하고 있다는 착각

―한나라당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보는가.

11일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홍정욱 의원이 최근 정치현안과 앞으로 계획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한·미 FTA 처리를 앞두고 수많은 토론을 했는데 평소 신망받는 중진 의원들이 올라오시더니, 농민 10명과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는데 농민들이 반대 안 하더라, 대학생 20명과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다 FTA를 반대하는 건 아니더라, 자기 휴대폰에 등록된 600명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더니 65%가 (FTA에) 찬성하더라, 하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절망했다. 소통의 가장 큰 적(敵)은 불통(不通)이 아니라 소통하고 있다는 착각이다. 누가 봐도 표본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닌가. 그렇게 침소봉대하니 민심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홍 의원은 국민과 소통하고자 뭘 했나.

"꽁꽁 막힌 젊은이들의 마음을 열고 싶어서 대학 특강을 많이 다녔다. '한나라당 사람도 사람이다'는 걸 심어주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웃음)."

―20~30대의 표심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 혼돈의 시대에 답 없이 내던져진 젊은이들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를 없애줘야 하는데 당·정·청이 그걸 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는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더 경쟁력을 갖추게 할 것인가에만 집착했다. 그래서 좌절하고 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나꼼수' 같은 일종의 정서적 자극, 단편적인 쾌감에 심취할 수밖에 없다. 상갓집 개처럼 뜬금없는 소리인지 모르지만, 이런 시대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뿐 아니라 세계경제가 다 어려운데 누구라도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을까.

"리더는 희망을 파는 장사꾼이다. 이번 정권이 경제적으로 어떤 실적을 올렸다 하더라도 국가의 비전과 국민의 성공을 잇는 다리는 끊어졌다."

내가 꿈꾸던 정치는 이런 게 아니었다

―홍정욱이 불출마를 선언한 데는 다른 '꼼수'가 있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지역구인 노회찬·정봉주와 대결을 피하려는 의도, 오세훈 전 시장처럼 불출마 선언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한 뒤 서울시장으로 나선다는 전략 등등.

"남과 똑같이 해서 하늘과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겠나. 다음 총선에서도 내가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지역구 활동은 미미했다는 비판이 있다.

"교육 특강 100시간 등 교육 관련 공약은 충실히 수행했다. 그러나 뉴타운이나 창동 기지 이전 같은 큰 사업은 결과물을 도출해내지 못했다. 지역 주민에게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

―지역구민, 유권자들에 대한 불만은 없나.

" 서민적이지만 교육열은 어디보다 높은 지역에서 많이 배우고 깨달았다. 다만 우리 유권자들이 실망스러운 정치 행태를 더욱 적극적으로 바꿔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봉건시대엔 군주가 사발이고 백성이 물이었지만, 지금은 백성이 사발이고 리더가 물인 시대다. 국민의 냉철한 심판이 있어야 폭력 국회가 사라진다."

―너무 자주 직업을 바꾸는 건 아닌가.

"열다섯 살 혼자서 유학을 떠날 때부터 나는 미리 해답을 가지고 도전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멈추지 않고 도전할 것이다."

한나라당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의원들이 예산안을 단독 처리한 지난 2009년 국회 본회의장에서 농성중인 민노당 이정희 의원을 한나라당 의원들이 자리로 데려와 휴식을 취하게 하고 있다. /뉴시스
―문제는 진정성이다. 예산안 강행 처리로 민노당 이정희 의원이 눈물을 터뜨리자 손수건을 건넸고, 그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을 때 '쇼'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 음모론은 끝이 없는 것 같다(웃음). 인터넷에 나에 관해 올라와 있는 글들을 보면, 내가 계획적으로 벤처회사를 도산시켰고, 계획적으로 군대에 갔으며, 계획적으로 FTA 표결에 기권표를 던졌다는 식이다. 그럼 내가 이정희 의원이 울 거라고 예상하고 손수건과 생수 한 병을 준비해 국회에 들어갔겠네?(웃음) 보좌관이 기다렸다가 그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내 소신이 소중한 만큼 그들의 소신도 소중하다. 온종일 국회를 지키며 서 있는 게 남자들도 힘든데, 여성이 종일 그렇게 있다가 눈물을 펑펑 쏟으니 어떻게 가만히 있나. 그리고 나를 귀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항상 의아스럽다.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배우의 아들을 귀족이라고 표현했나. 결국은 자기다움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귀공자 이미지가 싫다고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막춤을 출 수는 없지 않은가(웃음)."

―앞으로 당장 어떤 일을 할 건가.

"'올재'를 통해 젊은이들과 삶의 지혜를 나눌 것이다. 희망을 주고 싶다. 정치판에 안 돌아온다. 국회보다 중요한 곳이 세상에는 많더라."

―정치인 말은 믿지 말라던데.

" 하하! 사실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건데, 그렇게 말하면 또 여지를 남겨뒀다 할 테니까. 분명한 건 몇 년 뒤 다시 정치판으로 돌아온다는 상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는 내가 근본적으로 인지해왔던 정치 방식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정치라고 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