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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끼리 여행 한번 갔다오는 게 소원인데…"

천하한량 2011. 12. 2. 15:41

경남CBS는 2008년 겨울, 불황의 시기에 질병과 가난에 내 몰린 이웃들의 이야기를 '특별기획 2008 벼랑끝 이웃들'로 다루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지만 벼랑끝에 내몰린 서민들의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2011년 겨울, 하루 하루를 시리도록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다시 만나본다. [편집자 주] "휴, 휴…."

또다시 숨이 가빠진다. 해질녘 기온이 떨어지면서, 손수레를 끄는 할아버지의 입에서는 연거푸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인생의 무게만큼 무거운 폐품을 싣고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김상진(74.마산회원구.가명) 할아버지.

폐품을 줍기 위해 땅만 보고 걷는다. 반대편 도로가에 종이 상자를 발견하자 자동차들이 달리는 도로를 위태롭게 가로질렀다.

"아이고 다행이다. 다른 사람이 안 가져 갔네." 종이 상자를 얼른 수레에 실은 뒤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 3~4천원 벌이 "아들 병원비 대려면 더 벌어야 하는데…"

김 할아버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새벽 5시에 집을 나와 밤 9시까지 폐품을 찾아 도로 위를 헤매고 다닌다. 아침 한 끼를 먹으면 점심도 거른 채 11시간을 걷는다. 어쩌다 찌그러진 냄비나 고철 덩어리를 줍는 날은 횡재하는 날이다.

"하동 촌에서 40년 전에 먹고 살라고 마산으로 넘어왔소. 그 때는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기술도 없어 폐품을 주우러 다닐 수 밖에 없었지요. 요샌 통 고물이 없어요"

다 해진 가죽 점퍼에 흙먼지가 잔뜩 묻은 검은 색 바지, 털모자를 꾹 눌러쓴 할아버지의 새카만 얼굴엔 살아 온 인생만큼이나 주름이 가득했다.

하루 종일 폐품을 모아 팔아도 1만 원을 넘진 못한다. 요즘은 종일 발품을 팔아도 3~4,000원을 벌기 힘들다. 허탕을 치는 날도 점점 많아진다. 전기와 수도세를 내기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폐품도 귀한 몸이 됐다. 내 놓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얼른 채간다.

"폐품이 잘 안나와. 상점에서 물건도 많이 팔리고 해야 폐품도 많이 나오는데 경기가 안 좋은지 종일 걸어 다녀도 없어. 폐품 줍는 사람들도 요새 갑자기 많아졌어"

운동이나 소일거리로 삼아 폐품을 줍는 노인들과 달리, 할아버지에게 폐품은 생존의 문제다.

"밥 먹고 살기 힘들어. 하루 벌어 먹고 사는 거지 뭐. 큰 아들 녀석 병원값 대기가 벅차. 벌써 몇 천만 원이 들어갔는데…이래 벌어가지고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자식 얘기가 나오자 손사래를 치며 금새 눈물을 훔쳤다.

올해 41살인 큰 아들은 중학교 때 머리를 다쳐 뇌가 파열돼 정신병원에 20년 넘게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중학교 때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했다가 고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이상이 왔다.

"아들 생각하면 마음이 안 좋지. 번듯한 직장도 다니고 결혼도 해야 하는데…. 정신이 멀쩡하다가도 다시 이상해지고 계속 그러니까 병원에 입원해 있어. 매달 40만 원씩 병원비가 들어가는데 벌써 몇 달이나 밀려 있지"

삶의 힘겨움에 짓눌린 듯 긴 한숨만 연신 내쉬었다.

"이렇게 얘기할 시간도 없소. 빨리 하나라도 더 주우러 다녀야지. 다음에 또 보소"

할아버지는 손수레를 끌고 어둑한 밤거리를 다시 걸어 나갔다.

◈ "죽을 생각도 했는데...여행 한 번 가봤으면"

할아버지 집은 마산의 허름한 단층집이다. 한 눈에 봐도 오래되고 쓰러질 듯 낡아 보였다.

비가 새고, 벽은 금이 나가 있다. 고치고 싶지만 돈이 없다.

방 바닥은 발이 시릴 정도로 차가웠고, 바깥 공기가 더 따뜻할 정도였다. 보일러가 있지만 기름을 돌릴 형편이 못된다. 전기 장판으로 겨우 추위를 견디고 있다.

아내 이삼순(57.가명)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17살 차이가 난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몸이 성한 곳이 없다. 같이 일을 해야 할 처지지만 할 수가 없다. 어린 시절 다쳐 한쪽 눈은 시력을 잃었고, 허리까지 아파 몸져 누워 있다.

디스크 증상을 보여 병원에도 가봤지만 치료비가 없어 수술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허리에 복대를 차지 않으면 서 있을 수 없다.

" 할아버지도 계모 밑에서 구박을 받으며 자랐고 저도 어릴 때부터 식모살이를 했지요. 그렇다보니 배운 것도 없고 촌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 도시로 나왔죠. 애들 옷이라도 한 벌 해줄려고 말이죠. 둘 다 배운 게 없으니 고물 팔고, 저는 식당에서 일을 오래했죠. 애들 뒷바라지 한다고 무리했더니 허리가 탈이 난게죠"

아픈 큰아들 말고도 자식들이 있지만 다들 제 밥벌이 조차 힘든 형편이라 손을 내밀 처지가 아니다.

"형편이 안 되니까 다 자기들 벌어 먹고 살죠. 딸 결혼할 때 한 푼도 도와 주지 못했고, 작은 아들도 마찬가지죠. 자식들도 바라지 않아요. 남들만큼 사랑도, 도움도 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뿐이죠"

큰아들 얘기가 나오자 할머니도 눈물이 글썽거린다. 마음이 찢어질 듯 너무 속상하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큰아들 생각만 하면 맘이 짠하죠. 씨앗을 뿌렸으니 보살펴야죠. 장가가서 아이도 낳고 오순도순 살아야 하는데 가슴이 미어집니다. 말도 마이소…." 할머니는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오죽 그랬으면 너무 가슴이 아파 약 먹고 다 죽어야 겠다는 맘도 먹었어요. 아들이 저러는데 부모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짝 만들어놓고 죽는 게 소원인데…."

냉장고를 열어보니 텅 비었다. 텃밭에서 키워 만든 김칫거리가 유일한 반찬이다.

정부의 도움을 받으려 했지만 이 마저도 여의치 않았다."병원비가 몇 달 밀렸는데 정산할 때 돈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도움이 될까 싶어 주민센터에도 갔지만 다 쓰러져 가는 집 한 채 있다고 지원이 안된대요"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건강하기만을 바라고 있다. 5년 전 할아버지가 뺑소니 차에 치인 뒤로는, 할아버지 귀가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마음이 불안하다.

" 같이 손수레를 끌자고 해도 위험하다고 할아버지가 안 된다고 해요.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는데 제일 큰 걱정이죠. 가족끼리 여행 한 번 갔다오는 게 소원인데…, 너무 팍팍하게 살아 왔거든요. 그나마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버티고 살고 있어요"

할머니는 먼지가 쌓인 사진첩을 꺼내 들었다.

건강했던 중학교 시절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정말 심성도 착하고 잘 생겼는데…"라며 다시 눈물을 흘린다.

"아들아 얼른 나아서 함께 재미나게 살아야지…"낡은 사진 위로 할머니의 눈물이 떨어진다.
isaac0421@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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