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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 색깔이 짜장색이면 그게 대장암 징후일 가능성이 크다.

천하한량 2011. 12. 2. 00:27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올해도 어김없이 송년회 시즌이 왔다. 술 모임이 잦은 데다, 한 해의 다사다난(多事多難)은 숙취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어차피 가야 할 술자리와 들어야 할 술잔이 많은 게 한국 사회다. 하지만 다양한 '술독' 증상이 감춰진 질병의 신호일 수 있다는 점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술 먹은 다음 날의 설사는 술과 함께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 지방변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알코올이 장의 연동운동을 증가시켜서 변이 묽어질 수도 있다. 단, 진행된 대장암이나 대장 결핵이 있으면 알코올이 파괴된 장 점막을 자극하여 설사를 악화시킨다. 술을 쉬어도 설사가 지속된다면 이상(異常) 증상이다.

폭탄주를 마신 다음 날 대변을 보다가 변기에 붉은 피가 흥건히 고였거나 항문을 닦은 휴지가 선홍색 피로 물들어 대장암인가 깜짝 놀라서 병원을 찾는 이가 많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대부분 치질에 따른 항문 출혈이다. 장 속에서 일어난 출혈은 그렇게 빨갛지 않다. 장 출혈 피는 항문 밖으로 나오기 전에 장 속의 산소와 만나 까맣게 변한다. 오히려 대변 색깔이 이른바 짜장색이면 그게 대장암 징후일 가능성이 크다.

치 질은 항문이나 항문 주위 혈관이 확장되어 이루어진 혈관 덩어리인데, 과도한 음주가 항문 혈관을 더욱 확장시켜 밖으로 도드라지게 한다. '과음 후 화장실 출혈 사건'이 벌어지는 이유다. 음주 후 이전에 없었던 항문 출혈이 생겼다면 숨어 있던 치질의 출몰이라고 보면 되고, 아니면 치질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음주 후 속쓰림은 알코올 농도가 20%를 넘으면 위 점막에 세게 손상을 주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진단되지 않은 위궤양이나 만성위염이 있으면 속쓰림이 증폭된다. 유난히 독한 속쓰림은 위장병 신호다. 알코올이 식도와 위장의 연결 부위 괄약근을 느슨하게 만드니, 과음 다음에 신물이 넘어올 수 있다. 그러나 가슴까지 뻐근할 정도면 이미 역류성 식도염까지 올라왔을 가능성이 크다. 분에 넘치는 술을 마시다 보면 토할 수 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하지만 이때 피가 나오면 위험한 상황이다. 구토 과정에서 식도가 찢어지는 '말로리 와이즈 증후군'일 수 있으니 바로 응급실로 가야 한다.

술을 마시면 맥박이 빨라져 심장이 바빠진다. 그렇게 되면 심장 확장과 박동 간격이 짧아 한 번에 방출되는 피의 양이 줄어든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동맥경화로 좁아져 있으면 협심증이 촉발될 수 있다. 술에는 또한 중성 지방을 높이는 성분이 있다. 피를 끈적거리게 하여 협심증을 악화시킨다. 과음 후 평소와 달리 가슴이 답답하고 뻐근하면 협심증 초기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신체 증상은 몸에 과부하가 걸릴 때 증폭되는데, 사람들은 흔히 그걸 과부하 때문이라고 착각한다. 다양한 증상의 숙취를 술 탓으로 돌린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잠재해 있던 질병이 음주 때문에 드러났다고 생각해야 한다. 병원에서 하는 검사 중에 '스트레스 테스트'라는 게 있다. 신체에 질병 유발 요인을 가해서 평소에 발견되지 않던 숨어 있는 질병을 찾아내는 검사다. 송년 음주는 일종의 스트레스 테스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