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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지의 '약발'

천하한량 2008. 11. 29. 16:42

촌지의 '약발'
정성진 기자 sjchung@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수도권의 학부모들에게 "아이 선생님한테 촌지를 주느냐"고 물었다. 한 번도 준 적 없다는 학부모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안 받는 교사도 있다는 학부모도 있었다. 촌지(寸志)가 생각만큼 광범위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학부모들의 육성을 그대로 싣는다.

"차별만 하지 말라고 준다"

압구정동에 산다.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다. 1학년 5월쯤 아내가 다른 학부모와 얘기하다 우리 아이만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한 번도 못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알고 보니 우리만 안 줬더라. 보통 50만원씩이라고 했다. 그럴 형편이 안 돼 30만원을 케이크에 넣어 드렸다. 다음 날 아이 공책에 '참 잘했어요' 도장이 있었다. 그 뒤 분기마다 찾아가 30만원 혹은 50만원씩 준다. 사양하는 교사? 한 명도 못 봤다. 잘 봐달라고 줬다고? 그냥 타박만 하지 말아 달라는 의미에서 준다.

/중소기업사장(42)



"현금서비스 받아 줬다"

딸이 상계동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아이가 학교만 갔다 오면 울었다. 담임교사는 "아이가 산만해 벌도 줬는데 못 가르치겠다"고 했다. 전화로 부탁해도, 학교에 다녀와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며칠 뒤 아이가 선생님에게 손바닥을 맞고 왔다. 그 다음 날 아내가 카드로 현금서비스 30만원을 받아 봉투에 넣어 학교로 갔다. 아내는 "담임선생님이 내 손을 꼭 잡고 잘해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할 말이 없었다.

/보험설계사(37)



"명품 지갑을 내밀어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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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의 담임교사가 학년 초에 "학교 오지 말라"고 해 그 말을 믿었다. 알고 보니 학교를 다녀온 학부모들이 있었다. 아내가 혹시 하는 생각에 해외여행 중 사온 40만원짜리 샤넬 지갑을 가져갔다. 아내는 담임교사가 거절하면 자기가 쓰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교사가 "고맙다"며 덥석 받았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순진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대기업 차장(41)



"2학년 아들이 뺨을 맞고 와서"

아들이 신촌의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담임교사에게 자꾸 뛰어다닌다며 뺨을 맞고 왔다. 그 뒤에는 준비물을 안 갖고 왔다고 맞고 왔다. 별별 생각을 다 했다. 전화하니 "애한테 관심이 없느냐"고 담임교사가 말했다. 학교에 가서 10만원 봉투를 드리고 왔다. 그런데 다음 날 아이가 돈을 도로 들고 왔다. 다른 엄마에게 물어보니 "30만원을 넣든지 50만원을 넣든지 하라"고 했다. 다음 날 50만원을 들고 학교에 갔다. 맞고 오는 일은 없어졌다.

/주부(37)



"돈을 어떻게 전달하나 걱정했는데"

중2 딸이 강남구 대치동 학교에 다닌다. 애가 체육시간에 밖에 못 나갈 정도로 아파서 교실에 엎드려 있으면서 선생님에게 말을 안 했다고 했다. 아이가 잘못했다. 그러나 공부도 잘하는 애가 그 일 때문에 계속 혼났다. 엄마가 사과를 안 한 죄도 있다고 생각했다. 30만원이 든 봉투와 그 봉투를 넣어 전달할 책도 샀다. 봉투 드리면 무안해하지는 않을까 했는데 기우였다. 학교에 도착해 전화하니 교사가 혼자 있는 체육실로 불렀다. 그냥 돈봉투 줬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알게 된 아이가 그 다음부터는 학교에 못 오게 한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 돈으로 옷이나 사달라"는 것이다.

/주부(44)



"유치원도 성의 표시는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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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에 산다. 일곱 살 아이를 한 달에 70만원 정도 하는 영어 유치원에 보내고 있다. 엄마들이 물어보니 유치원도 기본은 챙겨야 한다고 하더라. 유치원 학비도 비싼데 선물한다는 게 좀 그랬지만 5월 스승의 날에 20만원씩 들여 원장, 한국인 선생, 원어민 선생께 외제 귀걸이와 목걸이를 사드렸다. 귀걸이 목걸이는 사이즈가 상관이 없어서 고른 것이다. 너무 좋아하시면서 받으셨다.

/주부(32)



"돈의 용도를 정확히 말해주더라"

고1 아들이 성북구 학교에 다닌다. 다른 내신은 괜찮은데 음악, 미술, 체육만 안 나온다. 걱정이 돼 학교에 가서 담임교사와 상담하려 했다. 일요일에 오라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봉투를 놓고 나왔는데, 선생님이 "이걸로 음악, 미술, 체육교사와 회식하면서 누가 내는 거라고 말하겠다"고 했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묘했다.

/주부(48)



"학년 끝날 때 갔더니"

과천에 산다. 최근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의 담임 선생님에게 아내가 봉투를 갖다 줬다. 1학년 때 담임은 아이가 적응 못하고 만날 울고 오줌도 싼다며 타박했었다. 떡을 사서 밑에 돈 봉투 깔아서 드렸더니 애가 모범생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2학년 선생님은 전혀 그런 게 없었다. 아내가 고마워서 학년 말에 인사하겠다고 간 것이다. 진짜 촌지라고 생각하고 갖다드렸다. 그런데 마지막이 압권이었다. 선생님은 "아이고, 이럴 줄 알았으면 상이라도 줬을 텐데"라고 하셨다고 한다. 오만 생각이 들었다.

/유통업체 부장(44)



"돈 돌려 보내며 편지 쓴 선생님"

목동에 산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4학년 딸이 있다. 촌지받는 선생님, 안 받는 선생님이 정해지는 건 완전히 운이다. 받는 분은 학기당 한 번은 드린다. 나만 해도 경험이 일곱 번 있으니까. 처음에 찔러 보면 안다. 괜히 안 주면 애만 피곤해지고 결국엔 주게 돼 있다. 작년 초 아들의 선생님한테 봉투를 드리면서 책상에 놓고 나왔는데, 아이 편에 편지와 함께 돈을 돌려 보내셨더라. 기분 정말 상쾌했다. 편지는 '성심 성의껏 잘 가르칠 테니 지켜봐 달라'는 내용이었다.

/대기업 차장(39)



"한 학년에 두 반, 촌지 준 적 없어"

아이가 서대문구의 초등학교에 다닌다. 한 학년에 두 반이다. 학부모끼리 잘 모이고 서로 뭐 하는지, 형편이 어떤지 잘 안다. 촌지는 줘 본 적 없다. 차라리 학교발전기금을 내라면 내겠지만 몇 명 되지도 않는 학교에서 촌지 주는 것은 너무 이상하다. 어떤 교사도 압력을 넣거나 다른 학부모가 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다. 소규모 학교가 이런 것은 참 좋다.

/대기업 부장(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