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눈이 그리울 때 생각나는 글이 두 편 있다. 이청준의 ‘눈길’이라는 소설과 바로
이덕무의 이 글이다. 단편 ‘눈길’은 겨울 방학을 맞아 시골을 찾아간 아들이 하룻밤을 잔 뒤, 새벽에 어머니의 배웅을 받고
눈길을 밟으며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가난 때문에 집을 판 어머니는 찾아온 자식을 위해 옛집을 빌려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다음날
어머니는 새벽 눈길을 밟으며 아들을 면 소재지 차부까지 배웅한다. 마을로 돌아오는 어머니가 걷는 눈길에는 아들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가난과 자식에 대한 그리움에 북받쳐 흐르는 눈물이다. 나는 엉뚱하게도 그 눈물을
눈[眼]과 눈[雪]이 함께 만들어낸 것으로 읽었다. 작가가 그려낸 눈 쌓인 길이 슬프도록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옛글에도 눈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지만, 당나라 유종원의 시 ‘강설(江雪)’이 먼저 떠오른다. 아마도 교과서에 실리면서 널리 애송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온 산에 나는 새 한 마리 없고
온 길에 가는 이 하나 없구나
외로운 배엔 도롱이에 삿갓 쓴 노인
홀로 낚시하는 차가운 강에 눈이 내리네
|
|
千山鳥飛絶
萬徑人踪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
조선조 화가 최북이 이 시를
제재로 ‘한강조어도(寒江釣魚圖)’와 같은 작품을 남긴 것을 보면 ‘강설’은 꽤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던 것이 분명하다. 어떤
평자는 세상의 고요와 작가 내면의 고독을 드러냈다고 극찬하기도 한다. 물론 눈 내린 풍경을 동양화풍으로 잘 그려낸 작품이다.
그러나 너무 정형적이어서 감동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마치 이발소 그림이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이덕무의 글은 유종원의 시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 글은 1763년 12월 이덕무가 서울에서 충주로 가면서 남한산성 근처의
고개에서 눈 내리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덕무는 유학자이지만 여기에는 공맹(孔孟)도, 천리도, 인륜에 대한 얘기가 하나도
없다. 그저 두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대로 기록할 뿐이다. 그러나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해 글에 힘이 넘친다. 작자는
마치 화가가 스케치하듯 눈 내리는 모습을 그려낸다. 소나무에 대한 묘사에서 원근법을 썼다면, 떼 지어 눈을 맞고 있는 까치를
기록한 장면은 세밀화의 기법을 동원한 듯하다.
시간과 장소가 구체적이어서 더욱 생동감이 난다. 작자가 직접 눈을 맞으며 보고 느낀 기록으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눈송이가 흩날리는 모습에서 베틀 위를 북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연상하는 것은 농경사회를 살았던 작자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수수의 빨간 껍질이 눈 위에 스치면서 그려내는 것을 초서체에 비유하는 데에서는 절로 무릎이 쳐진다. 작자는 눈송이가 뺨과 귓불을
스치자 입을 벌려 눈을 받아먹으며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대기 오염으로 지금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 옛날 시골에서 어린이들이
내리는 눈송이를 받아먹는 일은 흔한 풍경이었다.
인용문 뒤에는 눈 내리는 날의 소묘가 더 이어진다. 마부의 구레나룻과 눈썹에 눈이 쌓이며 만들어낸 해학적인 모습과 눈으로 먼
곳의 풍경이 실제와 다르게 비치는 등의 몇 가지 에피소드가 추가된다. 글 전체를 소개하지 못한 게 아쉽지만, 이처럼 눈 오는 날의
풍경을 빼어나게 그려낸 글은 쉽게 찾을 수 없다. 안타까운 사실은 원문의 군데군데에 글자가 결락돼 이덕무의 글솜씨를 온전히 접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도 우리 옛글 가운데 명문장으로 꼽을 만하다.
올겨울 서울에서 눈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이러한 글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한국고전번역원 사이트의
고전종합DB에는 ‘칠십리설기(七十里雪記)’의 원문과 번역문이 올라 있다. 광화문을 지날 일이 있다면 교보빌딩 ‘글판’에 쓰인
이용악의 시 구절을 음미하며 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이용악 시 ‘그리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