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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잃어버린 한국의 아이들 영어책부터 버려라!

천하한량 2007. 11. 18. 21:22
동화를 잃어버린 한국의 아이들 영어책부터 버려라!
리제트 팟기터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서울주재기자

한국에서 영어교사를 하는 친구가 몇 있는데 이 친구들과 커피를 마실 때면 항상 같은 불만을 토로한다. “한국 아이들은 자기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글쓰기 숙제를 내주면 쓸 내용 자체가 없는 것 같다. 항상 같은 이야기만
반복한다. ‘나는 어제 학원에 갔다 와서 공부를 했다’.”



모잠비크 국경 근처에 있는 내 농장에 점점 더 많은 불법 거주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 남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때 그 땅을 정부에 팔기로 마음먹고 사촌에게는 남아있는 영양을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대신 기념으로 영양 가죽을 한국으로 가지고 오고 싶었다. 다시는 영양이 뛰어 노는 농장을 소유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절대 그 가죽은 세관을 통과하지 못할 것” 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행가방 깊숙한 곳에 영양 가죽을 숨겨 운에 맡긴 채 한국에 왔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어린 내 한국인 친구 민철이는 우리집 거실에 깔려 있는 영양 위에 누워 있다. 그는 베이지색과 흰색이 섞여 있는 등 부분의 부들부들한 느낌에 완전히 매료됐다. 두툼하게 축 처진 꼬리에는 거듭 욕심을 보이더니 “학교 가져가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제 새 휴대전화랑 꼬리랑 바꿔요” 라면서 조르기도 한다.

7살인 민철이는 몇 주 전 지하철에서 처음 만났다. 우연히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고 요즘에는 우리집에 자주 들러 미국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낸다. 내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왔다고 말했는데도 말이다.

민철이는 내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맞벌이 가정 자녀의 대표적 모습이다. 민철이의 아버지는 뉴욕에 있고 어머니도 가끔 야근 때문에 집에 늦게 온다. 밤늦게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학원을 네 군데나 다니기도 한다.
한국의 부모들에게 아이들이 삶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놀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학원 밖으로 데리고 나와 나무를 오르게 하라. 머릿결에서 바람을 느끼면서 꿈꿀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라.

한국에서 영어교사를 하는 친구가 몇 있는데 이 친구들과 커피를 마실 때면 항상 같은 불만을 토로한다. “한국 아이들은 자기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글쓰기 숙제를 내주면 쓸 내용 자체가 없는 것 같다. 항상 같은 이야기만 반복한다. ‘나는 어제 학원에 갔다 와서 공부를 했다’.”

한번은 크게 좌절한 친구 한 명이 창의력 수업을 하겠다며 칠판에 다섯 개의 단어를 적어주며 이것을 이용해 이야기를 지어보라고 했다. 다섯 단어는 바구니, 열쇠, 산, 마녀, 왕자 였다. 그러나 몇몇 아이는 단숨에 답을 적어 내리며 만장일치의 답안을 보여줬다. “그들은 죽었다!”

대니얼 핑크는 2005년에 나온 그의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A whole new mind)’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에 논리적이고 직선적이고 컴퓨터와 같은 정확한 능력을 바탕으로 형성된 경제와 사회구조가 창의적이고 감정이 이입되고 복잡한 문제를 크게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사회경제체제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기업은 언제나 흐름에 앞서 나가기를 원한다. 아이들의 미래를 진정으로 준비해주고 싶은 부모라면 일단 지금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아직도 한국에서 시험은 개인의 능력을 바탕으로 형성된 중산층에 입성하기 위한 중요한 관문이다. ‘지식노동자’나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기반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성격과 리더십, 그리고 사회 전반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좌뇌적 생각만 가지고는 변화하는 흐름보다 한 발 앞서 나갈 수는 없다. 개념적 시대에는 우뇌를 활용해 생각하는 것도 중요시된다.

일본은 몇 년 전, 교과서에만 의존하는 교육은 진부한 공부법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 국가는 교육시스템을 창의력과 예술, 놀이를 육성하는 방향으로 바꾸고 있다. 즉 교육당국은 학생들에게 삶의 의미를 깨닫도록 돕고 있으며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교육’을 장려하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많은 한국인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입학하기를 열망한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하버드 MBA에서는 지원자의 10% 정도를 합격시키지만 UCLA 미술대학에서는 3% 정도만 합격시킨다. MFA(a Master of Fine Arts)는 최근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학위 중 하나이다. 비즈니스업계는 물량이 넘쳐 나는 오늘날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비스와 제품을 차별화해 상품을 더욱 ‘예쁘게’ 만들어 소비자의 감성적 면을 자극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우리는 개념적 시대에 대비해 스스로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까? 대니얼 핑크에 의하면 우리는 좌뇌의 추리력과 우뇌의 감성을 잘 조화해야 한다.
사무실과 교실에서 다시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우뇌 개발을 시작하기에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수많은 데이터만으로는 실제 어떤 논의를 정리하기 힘들다. 문제는 데이터를 문맥에 맞게 배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할리우드의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인 로버트 맥기는 “어른들은 소설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회계장부도 동화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다”라고 했다. 소설가 포스터의 말에 의하면 단순한 사실은 ‘왕 부부가 죽었다’이지만 이야기는 ‘왕 부부가 실의를 못 이겨 죽었다’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이야기’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하지만 좌뇌를 통한 사고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나는 한국에서 깜작 놀랄 만한 ‘스크랩 문화’를 느꼈다. 이 ‘스크랩 문화’는 단순한 사실에 집착하는 문화다. 예컨대 여학생들이 커피숍에서 몇 시간씩 보내면서 중요한 이벤트나 날짜를 다이어리에 기록하는 것이다. 그들은 일기장에 사진과 스티커를 붙이고 영화 티켓도 붙이면서 장식하는 데 시간을 쏟고 있었다. 일기장 표지에 붙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과시하면서 말이다.

민철이가 나를 방문하는 것을 알고 민철이 어머니는 나에게 민철이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숙제를 내줄 것을 부탁하는 쪽지와 함께 영어책 두 권을 보내왔다. 그러나 민철이 어머니는 내가 영어책을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것을 모른다. 우리는 영양 위에 올라타 진짜 사냥을 하는 것처럼 사파리 놀이를 하곤 한다. 민철이에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읽어 주었다. 토끼굴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상상할 수 있도록.  ▒

 


리제트 팟기터 |  196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생. 남아프리카대학에서 문학과 불교 전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프리랜서 언론인으로 일하다 2006년 7월부터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의 서울주재기자로 활동. 대한항공 기내지인 ‘모닝 캄(Morning Calm)’과 영자지 코리아타임스에도 한국의 문화와 여행에 대한 글을 정기적으로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