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연구로 최근 성균관대 박사 학위를 받은 선우영준(55ㆍ前수도권대기환경청장)씨는 8일 `고려와 조선국 시대의 독도' 저서를 발간하면서 독도의 명칭 및 영유권 연구 등에 대한 결과를 공개했다. 저서에 따르면 울릉도와 독도가 모두 한국땅이라는 최초의 문헌적 근거는 고려사 태조 왕건 13년(930년) 기록에 나타난 `우릉도(芋陵島)'이다.
`우릉도'는 `우산무릉이도(于山武陵二島)'를 축약한 것으로 우산국(于山國ㆍ울릉도)과 무릉도(武陵島)의 두 섬을 하나의 명칭(二島一名)으로 줄인 것이다.
고려사 930년 조에는 `우릉도가 백길과 토두를 보내 토산물을 보내거늘 백길을 정위로, 토두를 정조로 삼았다(芋陵島遣白吉土豆貢方物拜 白吉爲正位土豆爲正朝)'라고 기록돼 있다.
신라시대에는 정식 명칭인 `우산무릉이도'와 약칭인 `우릉도' 두개가 함께 사용됐는데 `우산무릉이도'는 정식 명칭으로 문헌을 통해 전수됐고 일상 생활에서는 우릉도라는 축약 명칭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선우 박사는 주장했다.
서기 512년 이전에 울릉도에 나라를 세웠던 사람들은 독도를 인지하고 필수적인영토로 이용하고 있었으며 당시 `二島相距不遠風日淸明卽可望見(두섬이 멀지않아 맑은날엔 볼수 있다)'이란 개념 자체가 형성돼 있었다.
서기 512년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되면서 `무릉도'라는 명칭이 형성됐고 그 직후`于山武陵二島在縣正東海中'이라는 표현이 문자화됐다고 선우 박사는 소개했다.
신라와 우산국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지칭하는 우릉도라는 명칭이 사용되는 동안강원 동해안 지역에서는 우릉도의 방언으로서 `울릉도(蔚陵島)'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서기 1018년 우산국이 멸망하면서 점차 강원도 지역 방언 명칭이 고려시대에도 통용되게 됐다.
선우 박사는 결국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이 `武陵島'→于山武陵二島在縣正東海中→于陵島→蔚陵島→鬱陵島로 이어져 온 것으로 파악된다고 결론지었다.
`鬱陵島'는 울릉도와 독도를 지칭하는 명칭으로는 가장 늦게 등장한 것으로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蔚陵島'를 `鬱陵島'로 착오해 쓴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지도에서는 우산도가 울릉도의 댓섬(죽도)으로 표기됐는데 당시 정조와 고종은 송죽도라는 명칭이 독도에 해당한다고 보고 독도의 관리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선우 박사는 "독도의 명칭 변천 과정에 비춰볼때 우산국 당시에 이미 완성된 독도 영유권은 신라와 고려, 조선국까지 한번도 상실된 적이 없이 지속적으로 유지돼 왔다"며 "독도는 국제법적으로 한번도 일본 영토가 된 적 없고 일본은 오직 자국의 영토로 만들려다 실패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선우 박사는 "독도의 원래 이름인 `무릉'에 근거해 독도를 생태 기술을 이용한 `무릉도원'으로 조성해 대대로 `꿈과 낭만의 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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