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를 생각하면 한국사람으로 태어난 사실이 무한히 자랑스럽고, 브라질이나 미국으로 이민 갈 기회만을 "목말라 애타게 찾는" 코카콜라족들이 가련하게 조차 여겨진다. 선생은 진실로 한말(韓末)의 거인(巨人)이요 쾌남아(快男兒)였다.
선생이 참찬(參贊)이라는 벼슬자리에 있을 때 당시의 참정대신 박제순(朴齊純)이 하루는 선생을 만나 하는 말이 "내가 불가불 위원 몇 십명을 써야 하겠으니 그리 아시고 또 영감께서도 몇 명 쓰시도록 하시오"하며 제법 아량을 베푸는 듯한 태도였다. 월남은 우선 박의 제안을 쾌히 승낙하시고 곧 이어 말하기를 "내게는 위원이 필요없으니 돈으로 주시오"하였다. 박씨는 크게 당황하여, "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대전(代錢)을 드리겠소"하며 얼굴빛을 달리하니, 월남은 여전히 태연자약한 태도로, "대감께서야 늘 팔아자시니까 판로(販路)를 잘 아시려니와 나야 판로를 모르니 소용이 있소?" 이 말을 듣고 박은 한참동안 말문이 막혔더라고 한다.
한번은 영의정 김홍집(金弘集)선생과 국사를 논하다가, "방금 전국에 탐관오리(貪官汚吏)가 많아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하니, 八인까지 갈 것 있소. 三인만 죽이면 될 것이요"하니 물론 그 뜻은 좌의정, 우의정을 합하여 三相만 죽이면 조야(朝野)가 깨끗해지고 탐관오리가 자취를 감추리라는 것이다. 궁극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데 애매한 팔도감사의 목은 잘라서 무엇하리.
미국대통령이 달러에 관하여 말 한 마디만 해도 금시 숨이 꼴깍 넘어 갈듯이 야단법석하는 이 나라의 경제력을 가지고, 어째서 높은 사람들은 캐딜락을 타고 링컨 컨티넨탈을 타고 벤츠를 타야 하는 것인지 나는 죽어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대개 몸집이 작아서 너무 큰 차에 타면 폭 파묻혀 밖에서 보면 탔는지 안 탔는지 잘 보이지도 않고 또 다리가 짧아 차의 바닥을 밟기도 어려울텐데. 오히려 국산 코로나, 코티나를 타고 차안에 그득하여 국민에게 충만(充滿)하고 든든한 느낌을 주는 것이 정치를 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국산차를 타고 다닌다고 외국인들이 우리의 지도자 답다고 칭찬할 것이다.
월남 이상재는 삼상(三相)만 주(誅)하면 대한제국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一掃)할 수 있다고 했다. 광주단지의 난동사건이 우리가 사들인 높은 사람들의 캐딜락, 링컨 컨티넨탈, 벤츠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일까.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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