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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막힌 20대…집값에 깔린 30대…노후 대책없는 50대

천하한량 2011. 9. 21. 19:36

◆ 분노의 시대 ① / 한국인은 왜 분노하나 ◆한국인의 분노는 연령대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세대별로 차이가 확연하다. 매일경제가 엠브레인과 공동으로 실시한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걱정거리 1ㆍ2위는 △20대는 진로 문제(30.1%)와 부족한 금전 문제(27.9%) △30대는 비싼 주거비 문제(35.2%)와 부족한 금전 문제(27.4%) △40대와 50대는 각각 32.2%, 37.5%가 노후 대책을 꼽았다. 공통점이라면 의식주에 해당하는 기본적인 욕구조차 해결되지 않았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 9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 자아실현은 사치 20대 "당장 생활비 마련위해 다단계 유혹 빠져" 지난 7월 서울 송파경찰서는 서울 거여동ㆍ마천동 등지에서 다단계 판매 영업에 지원한 이른바 '거마 대학생'을 강제로 합숙시키면서 교육과 물품 구입을 강요한 혐의(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조 모씨(30) 등 2개 다단계 업체 대표들에게 각각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관련자 2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피해자들은 '한 달 1000만원 수익 보장' '방산 업체나 대기업 취업 알선' 같은 문구에 현혹돼 조씨 등을 찾았지만 외출 제한은 물론이고 전화와 문자메시지조차 감시당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돈을 벌기는커녕 제2금융권에서 수백만 원의 돈을 대출받거나 1만원대 유산균 식품을 30만원이 넘는 금액에 사도록 강요당했다.

진로 탐색과 자아실현에 한창이어야 할 20대 중 상당수는 생존 외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반값 등록금' '채용 확대' 같은 정치권이나 대기업의 구호와 달리 지방 출신 대학생은 물론이고 서울에 사는 대학생들마저 당장의 생활비 마련에 신음하는 판이다.

서울 구의동에 사는 여대생 이 모씨(25)는 이른바 '징검다리 대학생'이다. 전기기술자였던 아버지는 몸이 불편해 10년째 쉬고 있고 어머니가 공장에서 벌어들이는 100만원대 수입으로 근근이 생계를 잇고 있다. 삼수(三修) 끝에 서울 소재 한 사립대에 입학했지만 두 학기 연속으로 대학에 다니는 것은 무리였다.

커피숍 서빙 같은 대학생들의 통상적인 아르바이트뿐 아니라 목욕탕 청소 같은 허드렛일까지 불사했지만 사립대의 높은 등록금을 모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작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국문과로 전과를 시도했지만 시험에 불합격했다. 학기 중에도 계속된 아르바이트 때문이었다.

비교적 넉넉한 가정형편에 승승장구하고 있는 20대들도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 채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지난 6월 1학기 기말고사를 마친 서울대 로스쿨 인터넷 게시판에는 "다른 학생 4~5명이 답안지를 10분 정도 늦게 냈다"는 학생 10여 명의 항의가 빗발쳤다. '나도 시험을 10분 더 봤으면 더 좋은 학점을 받았을 것'이라는 불만이었다. 시험장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내용의 항의 메일을 교수들에게 보낸 학생도 있었다.

사회 부조리에 온몸으로 '저항'했던 선배 386세대의 20대 때와 달리 지금 20대들은 힘겨운 세상을 소리 없이 분노하며 '적응'하고 있다.

◆내집마련은 먼꿈 30대 "전세금 감당못해 차라리 지방근무 자원"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졸, 취업, 결혼, 출산이라는 숙제를 해결한 30대들에게는 또 다른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주거라는 난제다. 치솟는 전세금과 높아진 은행 문턱으로 난이도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봄까지 서울 소재 유명 공기업 A사에 다니던 직장인 최현철 씨(가명ㆍ33)는 아예 지방 근무를 자원했다. 최씨는 2007년 말 A사에 취업했다. 이내 결혼을 위해 은행에서 7000만원을 대출받아 서울 등촌동에 전세 8000만원의 56㎡(17평) 규모 아파트를 구했다. 아내는 임신을 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근근이 대출금을 갚아나가던 최씨에게 집주인은 2년간의 계약기간이 끝나자 전세금을 2000만원 더 올려달라고 했다. 일단 마이너스대출을 받아 전세계약을 연장했지만 이내 최씨는 인사팀에 지방 지사 전보 신청을 냈다.

코스피 10위권 대기업 대리로 근무하는 김 모씨(30)는 2년 전 일만 떠올리면 지금도 울화통이 치민다.

2009년 당시 직장생활 3년차였던 김씨는 결혼을 하기 위해 1억4000만원가량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66㎡(약 20평) 규모 아파트를 장만했다. 급여의 40%가량을 이자로 부담해야 했지만 "열심히 일해서 차곡차곡 갚아나가자"는 마음에 내린 선택이다. 김씨의 당찬 포부가 무너져내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열흘 뒤 회식에서 무심코 꺼낸 말이 화근이었다. "집은 어디에 구했느냐"는 팀장에게 "분당에 20평짜리 겨우 샀다"며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 이자로 힘들다"고 대답한 것. 팀장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주말에 예고 없이 회사로 불러내는 건 일상이었고, 평일에도 허드렛일만 시켰다. 함부로 대해도 절대로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리라 생각한 모양이다.

업무 만족도, 자아실현 같은 표현은 김씨에게 딴 세상 이야기였다.

팀장이 다른 부서로 옮기기까지 1년 동안 김씨가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었던 유일한 덕담은 "아무도 믿지 마라"였다.

◆노후 막막한 40ㆍ50대 "교육비에 허리꺾여…적자인생 못벗어나" 마흔줄에 접어들면 가뜩이나 팍팍한 살림에 자녀 교육비 부담까지 가세한다.

경기도 안양시에서 복사기 대리점을 운영하는 김상덕 씨(가명ㆍ48)는 두 자녀를 둔 4인 가구의 가장이지만 10년 넘게 59㎡(18평) 전세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봉의 복사기 업체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던 김씨는 자녀들이 자라면서 더 많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4년 전 직접 복사기 대리점 사업에 나섰다. 하지만 최근 복사기와 토너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면서 벌이는 월급쟁이 시절보다 오히려 못했다. 각각 초등학교 5학년과 1학년에 접어든 딸과 아들의 교육비 마련을 위해 보다 못한 아내는 인근 대형마트에 주부사원으로 취업했다.

김씨는 "부부 벌이 합쳐봐야 애들 학원비는커녕 방과 후 교실 비용도 대기 힘들다"며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꾸고 있고 마이너스통장이라도 빨리 갚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마저도 사회에서 자리 잡지 못한 이들은 일확천금을 꿈꾸며 투기나 다름없는 투자에 나섰다가 쪽박을 찼다. 일부는 사기범이 돼 애써 모은 서민의 전세금을 가로챘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3단독은 지난 7월 아파트를 월세로 빌린 뒤 신분증 등을 위조해 집주인 행세를 하며 다시 전세를 놓는 수법으로 150명의 피해자에게 48억여 원을 가로챈 정 모씨(46) 등 일당 3명에게 징역 10~15년을 선고했다.

경제난에 따라 희망의 끈을 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에 나선 50대도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베이비부머의 대표 계층인 '58년 개띠'를 비롯한 50~54세 남성의 10만명당 자살률은 2009년 기준 62.4명으로 20년 전인 1989년(15.6명)의 4배에 달한다.

[기획취재팀 = 이진우 차장 / 이지용 기자 / 강계만 기자 / 이상덕 기자 / 최승진 기자 / 고승연 기자 / 정석우 기자 / 정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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