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수웅 문화부 차장
시사주간지 기자였던 시인 이문재의 별명은 '산만 선생'이다. 낮에는 기사를 쓰고 밤에는 시를 쓰던 시절을 마감하고 지금은 낮이건 밤이건 시를 쓰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그가 스스로 명명(命名)한 일종의 자조 유머이다. 쉰 줄을 넘기면서 집중력과 기억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고 엄살을 피우던 시인이, 최근 그동안의 엄살을 정면으로 뒤집는 글을 한 문예지 가을호에 썼다. 요약하면 "그동안 하루가 다르게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체력과 나이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IT 미래학자 니콜라스 카(Carr)의 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인터넷이 우리의 뇌구조를 바꾸고 있다'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기억력과 집중력을 그 지경으로 만든 주범(主犯)을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지목했다. 이 흉악한 범인들은 세계로 열린 창(窓)이 아니라, 세계가 수시로 나를 기습하는 창이라는 주장이다.
"(기억력·집중력 상실이) 정말 스마트폰에만 책임이 있을까요?^^" "나 벌써 그 글 내용 까먹었어. 산만 이문재" 이렇게 농담 섞은 문자를 주고 받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그의 고백은 기자의 현실이기도 했다.
시 인은 "예전 같으면 두 시간이면 완성해서 마감했을 원고가 다섯 시간 넘게 걸릴 때에도 나의 무능력을 탓했다. 하지만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로 글을 쓴다는 것은 좋아하는 탐정영화를 보면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시사칼럼을 한 꼭지 쓰겠다고 덤비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이런 사정은 남의 일이 아니다. 삐삐에서 휴대전화로, 노트북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뀌어간 IT 세상의 변화 속에서 기자의 삶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가까워졌다. 인터넷 검색이랍시고 '아웃소싱'에 의존하다 보니 기억력은 쪼그라들고, '끝말 잇기' 놀이에 빠져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다 정작 뭘 찾으려 했는지 잊는 일도 부지기수이며, 어쩌다 짬이 나더라도 조건반사적으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독서 체험도 그의 말대로 부분부분 끊어지는 스타카토다. 죽 이어서 읽는 선형적(線形的) 독서는 과거의 추억일 뿐이다. 스마트폰 세상에서 깊은 사유와 생각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스마트폰이 스마트한 삶을 가로막는 아이러니를 절감한다. 초인적인 의지로 억제하지 않으면 고요나 평온, 사유가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애플의 르네상스와 HP의 패퇴 등을 지켜보면서, 최근 정부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IT산업의 중심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몰락은 이 분야 전문가에 대한 박한 처우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잇따랐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산업의 핵심은 상상력과 창의력에 있다. 미디어학자 마셜 맥루한은 "도구에 의해 그 기능이 증폭되는 우리 신체의 일부분은 결국 마비될 뿐"이라고 경고했다. 기능적인 업무 해결과 말초적 엔터테인먼트를 위해서는 스마트폰의 진화가 고맙지만,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점점 우리의 뇌를 딱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게임 중독이라고 청소년만 탓할 일이 아니다. 당신의 스마트폰 중독도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