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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공화국, 대한민국] 부장은 빈 회의실, 대리는 화장실서 "주식, 주식

천하한량 2011. 8. 20. 17:10

코스피지수가 100포인트 넘게 폭락한 19일, 이모(39) 과장이 다니는 중소 무역업체 사무실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증시가 개장하는 오전 9시가 되기도 전에 사무실 직원 11명 중 6명이 컴퓨터 화면에 주식 HTS(홈트레이딩시스템) 창을 열어놓고 뚫어져라 쳐다봤다. 화면이 순식간에 주가 하락을 알리는 파란색으로 뒤덮이자 침묵이 더 깊어졌다. 점심시간에는 침울한 분위기 속에 주식 이야기만 오갔다. 이 과장은 "손실이 너무 커 서로 어떤 종목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껄끄러운 분위기"라고 했다. 인터넷 주식 사이트의 종목 게시판에는 "반등 때 팔려고 버티고 있다가 망했다" "시장이 미쳤다"는 한탄이 끊이질 않았다.

↑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19.5%에 해당되는 479만명이 주식 직접투자를 하고 있다. 근무 시간 중 회사 컴퓨터로 주식 거래를 할 수 없는 직장인들은 스마트폰으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식을 사고 판다. /조인원 기자

◆'주식 공화국' 된 대한민국

주가 폭락의 충격파가 한국 사회를 덮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995년 244만명이었던 주식 직접투자 인구가 2010년 말 현재 479만명으로 갑절가량 늘었다. 1995년에는 전체 인구의 5.4%, 경제활동인구(15 세 이상 중 취업을 했거나 구직 활동을 하는 실업자)의 11.7%가 직접투자를 했는데, 지금은 전체 인구의 9.8%, 경제활동인구의 19.5%가 직접투자를 한다. 펀드처럼 주식에 간접투자하는 사람이 직접투자하는 사람의 두 배쯤 되는 걸 감안하면 경제활동인구 10명 중 6명이 주가에 따라 울고 웃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중에서도 주식 투자를 가장 많이 하는 계층은 수도권의 샐러리맨이다.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 중 70.6%가 25~55세이고, 서울 지역의 개미 투자자 군단만 130만명에 이른다.

최근 주가가 폭락하자 수많은 투자자가 우울증에 빠졌다. 대기업 2년차 직장인 이모(27)씨는 요즘 회사에서 휴대전화만 들여다본다. 이씨는 올 초 결혼 자금 8000만원을 H해운 주식 한 종목에 몰아 넣었다. 업종도 호황이고, 회사도 탄탄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5개월 동안 하락해 반 토막 나더니, 지난주엔 추가로 30% 손실이 나 팔 수도 없었다. 이씨의 주식 계좌에는 3000만원도 안 남았다.

◆회사에서 인터넷 주식 거래 막아도……

1999년 5월 현대중공업은 국내 대기업 중에 처음으로 회사 내 컴퓨터에서 증권 사이트를 차단했다. 근무시간에 주식 거래를 하는 것이 생산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그 후 상당수 대기업이 회사 컴퓨터로 주식 거래하는 것을 막았다. 이런 대기업에 근무하는 샐러리맨이 주식 투자를 하려면 근무 중 잠시 빠져나와 증권사나 가족에게 전화로 사고팔 것을 지시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풍경도 옛말이 됐다. 스마트폰으로 주식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직장인들은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주식 거래에 빠져 있다. 제2금융권 회사에 다니는 이모(39) 과장이 속한 팀 9명 중 6명은 주식 투자를 한다. 주임·대리급은 1500만원, 이씨와 같은 과장급은 3000만원, 부·차장급은 5000만원 정도가 종잣돈이다. 이들은 회사 컴퓨터를 쓰진 않는다. 부·차장급은 빈 회의실을 찾아가, 그 밑 직급은 화장실에서 스마트폰을 두드려 주식 거래를 한다.

'도박, 골프, 주식, 사내 연애 금지'라는 암묵적인 '4금(禁)'이 통용되던 삼성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그룹의 한 계열사 화장실은 지난주 사설(私設) 증시 분석센터를 방불케 했다. 이 회사 직원 A(27)씨는 "상사들이 주식 투자할 시간이 필요해서인지 평소엔 약간 늘어졌던 부서 회의가 일찍 끝났다"며 "우리 부서에 있는 동기 8명 중 한 명 빼곤 모두 500만원 정도씩 주식 투자를 하고 있어 화장실에서 종목 정보 나누기 바빴다"고 했다.

공기업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6월 감사원은 금융 공기업 5곳을 감사해, 근무시간에 상습적으로 주식 거래를 한 공기업 직원들의 징계를 요구했다. 당시 감사를 받았던 국책은행의 한 직원은 "감사받은 후에도 회사 컴퓨터로 하지 않을 뿐, 주식 거래하던 사람들은 다들 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주식 거래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7월 1.8%에서 불과 1년 만에 5.1%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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