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글모음 ▒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게 행복"

천하한량 2011. 2. 27. 22:51

'시골의사' 박경철씨 에세이 100쇄 돌파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박경철씨의 에세이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2권'(리더스북 펴냄)이 최근 100쇄(刷)를 돌파했다.

'쇄'란 책의 출간 횟수를 세는 단위. 100쇄는 책을 100번 찍었다는 뜻이다. 유명 소설가의 작품이 아닌 비전업 작가의 에세이가 100쇄를 넘기는 일은 흔치 않다. 2005년 출간된 이 책은 1권과 2권을 합쳐 누적 판매량이 50만여 부에 이른다.

지난 25일 기자와 만난 박씨는 "실용서인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이 100쇄를 넘겼을 때는 오히려 창피했는데 너무 행복하고 감개무량하다"면서 "제 삶에서 청년 시절에 가장 열정을 갖고 했던 일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에는 의사인 박씨가 안동의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의 사연과 이야기가 담겼다.

"생활 속 이야기를 평범하다고 하지만 평범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곡절이 다 있고, 살아온 삶이 대하소설입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지켜보면 '물결'과 '곡절'이 보입니다. 저는 의료 현장에서 이 책을 썼지만 학교 선생님, 파출소 순경에게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살아가는 모습과 곡절, 사연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책이 100쇄를 찍는 동안 그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책을 낸 뒤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의사이자 경제평론가, 방송인, 칼럼니스트로 맹활약한다. 이메일 문의도 쏟아진다. 하루에만 400-500통의 이메일이 오며 이를 확인하는 데만 1시간가량 걸린다. 연간 평균 400회 강연을 하며 올해에는 이미 6-7월까지 강연 스케줄이 꽉 찼다.

작년 봄부터는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와 함께 지방대학을 돌며 청소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강연도 한다.

"이 책을 낸 뒤 어느 날 중고등학생들이 저자 강연이 듣고 싶다는 요청이 왔습니다. 인생은 때에 따라 아픔과 슬픔이 있다는, 아이들이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게 가치 있게 생각됐습니다. 그래서 (청소년 대상 강연을) 연간 100회로 늘렸습니다. "

박씨는 특히 그럴듯한 말로 아이들을 위로하는 것으로는 아이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성세대는 아이들에게 관념적인 이야기나 '이쁜 이야기'를 하기 쉬운데 불합리한 시스템은 그대로 둔 채 겁내지 말라며 그럴듯한 달콤한 말로 위로하는 것은 눈가리개를 하고 강물에 뛰어들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강에 뛰어들 수 있게 안전장치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윗세대가 우리 사회에 크게 기여한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구시대의 성공양식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목표가 앞에 있으면 동료가 넘어지고,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져도 무시하고 달렸습니다. 그렇게 해야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내가 무릎이 깨지고 피투성인데 깃발과 트로피를 가진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제는 깃발보다는 땅바닥에 넘어진 동료에게 손을 내밀고 주고, 따라오게 기다려 줘야 합니다."

박씨는 '가장 영향력 있는 트위터 사용자'로도 유명하다. 작년 3월 트위터를 시작한 그는 팔로워가 20만 명에 이른다.

그는 트위터 등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활성화하면서 진정한 '대중권력의 시대'가 시작됐다면서 "예전에는 소위 말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견을 주류 의견이라 생각하고 거기에 자신의 의견이 일치하는지 맞춰봤는데 이제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견이 대중의 의견에 맞는지, 아니면 대중을 오도하는지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또 대중권력의 시대는 수직구조가 아니라 수평구조이기 때문에 트위터 팔로우가 20만명이든, 200명이든 그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면 대중은 받아들이지만 왜곡되고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면 대중이 먼저 차버린다"고 말했다.

감동적인 에세이를 쓴 의사이자, 냉철한 경제평론가인 그에게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 질문을 던졌다.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 말한 것처럼) 행복은 '욕망'을 분모로, '가진 것'을 분자로 놓는 것(행복=소유/욕망)과 같습니다. 가진 것을 늘릴 수 없으면 욕망을 줄여야 하는데 산업혁명 이후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가진 것을 늘리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욕망을 제로(0)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래서 욕망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제 인생에 목표가 없습니다. 10년 뒤보다 지금이 더 중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면 행복한 것이고, 충실하지 않으면 불행했던 과거가 되겠지요."

그는 "이 책에서도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이든, 억만금이 있는 사람이든 간에 수술대에 올라가면, 죽음과 맞닥뜨리는 순간 보여주는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더라. 그러니 지나치게 탐욕적인 필요가 있겠느냐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면서 "오히려 거칠게 살아왔지만 가족 간에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지막이 더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yunzhen@yna.co.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