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태수도와 수박도 분규에 대한 공개>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육군 소장이 이끄는 군사 쿠데타가 성공한다. 군사정권은 국가재건최고회의를 구성하고 포고령 제6호 ‘사회단체 재등록에 관한 포고’를 발표한다. 이에 따라 문교부는 유사단체 통합을 추진하며 7월 12일, 유사 무술단체로 판단되는 대한수박도회(황기), 대한태권도회(최홍희), 공수도 창무관(이남석), 공수도 송무관(노병직), 강덕원 무도회(박철희), 한무관 중앙공수도장(이교윤) 등의 대표를 소집하여 통합을 추진한다.
각 관의 대표들은 이날 이후 수 차례 만나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 끝에 결국 통합에 합의한다. 창립위원, 정관 기초 위원 선출 등 통합 단체를 위한 기본적인 틀을 잡아가며 당시 이들이 공통으로 자신들의 무도(武道)를 지칭하던 ‘사도(斯道)’계의 통합이 마침내 눈앞에 다가왔다.
마침내 9월 19일 오후 3시 30분, 한국체육관에 송무관의 노병직, 무덕관의 황기, 지도관의 윤쾌병, 청도관의 엄운규, 창무관의 이남석, 한무관의 이교윤, 강덕원의 박철희, 오도관의 고재천, 한국체육관의 이종우 등이 모였다.
이날의 회의를 들여다보자.
====================================================================
윤쾌병: 의장 선출시까지 임시의장을 보겠습니다. 금일의 의장을 선출하십시오.
황 기: 노병직씨를 의장으로 할 것을 동의합니다.
이남석: 찬성
윤쾌병: 이의 없으면 의장으로 선출된 것을 선언하며 의장자리를 물러나겠습니다.
노병직: 의장을 맡아보겠습니다. 정관안도 통과를 보고 나머지 임원 선출로 들어가겠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서기는 회의록을 낭독하시오.
<중략>
이남석: 16일 헤어질 때 명칭은 나중에 결정짓고 임원을 먼저 선출하자고들 말한 것을 보충제의 하겠습니다.
윤쾌병: 그렇다면 개의한 것을 철회하겠습니다.
황 기: 철회하겠습니다.
노병직: 그럼 동의집을 채택하여 임원 선출을 먼저 할 것을 선언함.
윤쾌병: 호명으로 선출할 것을 동의합니다.
이남석: 금일은 이만 해산하고 말일(내일)이나 모레 모여서 선출하자. 신중을 기함을 요한다.
황 기: 시간적 여유는 어느 정도냐.
윤쾌병: 아무깨도 좋다.
노병직: 여러분 그러면 말일 오후 3시에 다시 회합하기로 하고 오늘은 해산하는게 좋겠습니까.
일 동: 찬성.
노병직: 금일은 이만 폐회하겠습니다.
====================================================================
다음 날인 20일 오후 3시, 이들이 다시 모였다. 이날 참가한 사람은 전날과 약간 차이가 있었다. 윤쾌병(지도관), 황기(무덕관), 엄운규(청도관), 노병직(송무관), 남태희(오도관), 이남석(창무관), 이종우(한국체육관), 이교윤(한무관), 박철희(강덕원) 등 9명. (이 중 이종우는 지도관 소속이었으나 회의 장소인 한국체육관의 대표라는 점에서 옵저버의 자격으로 참가)
20일 회의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할 문제는 명칭. 가장 첨예한 문제였다. 당시 이들은 자신의 무도를 태권도, 수박도, 공수도, 당수도, 권법에 이르기까지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태권도인가? 공수도인가?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 제3의 명칭인가? 그날의 회의록을 다시 펼쳐보자.
====================================================================
노병직: 명칭에 대하여 의견을 말하십시오.
남태희: 1959년 회합 시 만장일치로 태권도로 정한 적이 있으니 태권도로 할 것을 동의한다.
엄운규: 찬성한다.
윤쾌병: 당시 문교부에서 말하기를 경무대 내신하여 결정했다고 읽어 주어서 된 것인지 알았지 만장일치로 된 것은 아니다. 그러면 우리는 공수도로 고수하겠다. 공수도(KARATE)는 국제적인 명칭이다. 노병직씨, 이남석씨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노병직, 이남석: 옳은 말씀입니다.
윤쾌병: 그러니 명칭을 절충해서 태수도로 할 것을 개의합니다.(태권도의 ‘태’와 공수도의 ‘수’를 따가지고)
이남석: 개의에 찬성합니다.
노병직: 그럼 표결에 붙이겠습니다.
[표결 결과] 태수도 가:4표, 부:0표, 기권:2표(총 6표 중)
노병직: 태수도로 통과된 것을 선언합니다. 그럼 금일은 이만 폐회하겠습니다.
====================================================================
이날 투표에 참가한 사람은 노병직, 황기, 윤쾌병, 이남석, 엄운규, 남태희 6명이다.
회의 내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노병직, 황기, 윤쾌병, 이남석은 ‘태수도’를 원했다. '태권도'는 태권도라는 명칭을 처음 만들어낸 최홍희의 오도관 대표 남태희와 오도관과 가까웠던 청도관의 대표 엄운규 만이 지지했다.
결국 이렇게 대한태수도협회로 출발한 통합 단체는 1965년 최홍희가 제3대 대한태수도협회 회장이 된 후 8월에 대한태권도협회로 단체명을 바꾼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게 된 것.
이러한 태권도 통합의 상세한 내용이 최근 남창도장 강신철 관장과 그 제자인 배병철 사범의 노력으로 발간된 <태수도와 수박도 분규에 대한 공개>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태권도 단체들이 대한태수도협회라는 이름으로 통합한 이후 통합의 한 축을 담당했던 무덕관의 황기 관장이 제자들과 갈등을 겪어가며 태수도협회에서 탈퇴하는 내용까지 가감없이 담겨있다. 황기 관장의 제자로서 스승과 다르게 태권도 통합의 대의에 합류한 것이 고 홍종수 원로.
이 책을 발행한 강신철 관장은 스승 홍종수 원로로부터 자료를 물려받으면서 때가 되면 세상에 내놓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것이 바로 살아있는 태권도의 역사. 태권도가 화랑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택견을 계승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대한태권도협회의 전신이 대한태수도협회라는 것, 그리고 태수도라는 이름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무도가 태권도가 아닌 공수도(황기는 수박도)라고 생각했던 것 만큼은 분명하다.
박성진 태권도조선 기자 kaku616@gmail.com